편집자 주: 김하은 전도사는 기장교단 출신 청년이고, 초교파 신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예장 통합 교단에서 사역했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을 때는 고난 주간 직전이었습니다. 매일 교회에서 저녁 집회가 있다고 하여 월요일에 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예배가 끝난 이후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조금 더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기도를 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예배 시간 전에 저의 선임 교육부 사역자분이 할말이 있다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방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하고 교회에서는 방언 기도를 최대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교회보다 편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기도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대학 생활 내내 방언 기도를 하는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기도도 많이 하고 채플 시간이나 학교 수련회 시간에도 방언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친하게 지내던 몇몇 사람들의 걱정을 받았습니다. 방언을 어릴 때 받고 그냥 익숙하게 기도했던 저에게 제일 충격적이었던 첫 마디는 “방언 위험한거 아니야?” 였습니다.
치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유전적으로 집안이 무릎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학생 때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늘을 무서워해서 도저히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았고 고통은 더해지던 중학교 3학년 때, 금요철야 시간에 기도하다가 치유를 받았고 지금까지 멀쩡하게 걸어다닙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늘 방언이 위험하지 않냐고 말하고, 예언은 이제 없다고 말했고, 친구들이 읽는 큐티 책에는 치료의 은사는 이제 없어졌다고 써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다른 하나님으로 보는 신앙은 거짓이라고 말하면서, 신약 시대, 성령 시대에 일하신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은사를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예배받기 합당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제 인생 제일의 행복입니다. 은사를 목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위험성은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초래될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은사가 이제는 없고 위험하다고 말하는 모든 소리에 반대하고 싶습니다. 그 모든 말들이 하나님을 한계 짓는 것이며, 신앙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찬양단을 한다고 다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찬양단은 강단을 무대로 삼으며 교만해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찬양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그 누구보다 교만해지고 '위험'해지기 쉬운 것이 한국 교회의 특성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목회자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은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어떤 신학과 마음가짐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저는 현재 기장 교단에 있습니다. 제 신학적 스탠스는 보수적인 방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교단은 대부분 은사를 좋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은사를 부정하지 않고 성령 사역을 수용할 수 있는 교단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로서 은사를 바라보고, 은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삶이라는 신앙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은사를 사용하는 교회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