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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8일 창조절 일곱째 주일

관리자 2026-11-01 (일) 14:28 12시간전 4  

2026년 10월 18일 / 창조절 일곱째 주일

출애굽기 3:1-8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이 놀라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 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서, 얼굴을 가렸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이 사는 곳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히브리서 4:1-2, 12-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에, 여러분 가운데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하십시오. 그들이나 우리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하나님 앞에는 아무 피조물도 숨겨진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서 3:31-36

위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여서, 땅의 것을 말한다.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증언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심을 인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셨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 ]

1.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의 자녀들에게 말 걸어 오십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침묵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자리로 다가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에게 말 걸어 오실 때,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 오늘 세 본문은 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부르시고,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출애굽기는 모세의 이름을 부르며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결합하라고 권면합니다. 요한복음서는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다가오지 않으십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움직이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구원의 말씀으로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2. 자유와 해방의 길로 부르시는 하나님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호렙 산 근처에 이르렀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은 먼저 이름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거실 때, 그 목적은 우리를 단지 도구로 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 안에는 ‘내가 너를 이미 알고 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심 자체가 이미 은혜입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무작정 가까이 가서 붙잡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변화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은 외형적인 예절을 갖추라는 요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내 욕망과 계산을, 내 생각과 고집을, 나 자신을 내려놓으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 앞으로 부르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개입하시는 분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세대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언약을 따라 계속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언약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을 거신 이유를 밝히십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은 고통을 멀리서 관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으로 데려 가려고 한다.” / 하나님이 말 걸어 오시는 이유는 해방과 구원을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방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말 걸어 오십니다. 세속의 욕망과 성취의 강박, 비교와 불안,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상처와 분열, 상황에 매여 멈추지 못하는 삶의 굴레 때문에 노예같이 살아가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과 자유의 길로 가자고, 우리에게 말 걸어 오십니다. (잠시 멈추라고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말씀과 삶의 결합

히브리서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으면서도 옛날 유대교의 신앙생활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을 받고도 거기에 미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는 역사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약속을 받고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믿음과 결합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말씀을 읽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결합하지 않으면 그 말씀이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말씀을 실제 삶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음과 결합한다는 것은, 말씀을 내 생각 안에만 두지 않고 삶의 기준과 방향으로 받아들이며, 실제 생활 속에 순종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은 약속의 땅에서 누릴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안식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평안과 영원한 생명의 상징입니다. 광야의 백성들이 말씀을 믿음과 결합하지 못하여 안식을 누리지 못했듯이, 우리도 같은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듣되, 반드시 삶으로 결합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말씀이 사람 속을 꿰뚫어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죄를 위한 폭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드러냄입니다. 감추는 동안 병은 깊어지고, 숨기는 동안 상처는 깊어지며 관계는 왜곡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드러낼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됩니다. 말씀은 우리를 해부하지만,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드러내시는 이유는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고쳐서 다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 걸어 오실 때, 우리는 숨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을 감추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되, 그 말씀을 내 인생과 결합해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된 안식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 앞에 숨김없이 드러내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4. 아들을 통해 말 걸어 오시는 아버지

요한복음서는 말합니다.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장 14절)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통해 가장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 걸어 오신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은 ‘위에서 오시는 이’와 ‘땅에서 난 사람’을 구분합니다. 위에서 오시는 이, 곧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우리에게 말 걸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땅에서 난 사람은, 세례자 요한을 비롯하여, 예수님 이외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구분은 땅에서 난 사람을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심부름꾼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 요한복음서는 말합니다. “하늘에서 오시는 이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 모든 것의 위에 계신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인 까닭은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확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언어는 땅의 언어라는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땅의 언어는 하늘의 언어를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능력과 경험과 표현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람의 말과 사람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요한복음서는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아들의 손에 맡기셨다.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땅에 살면서도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을 걸어 오실 때,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을 언제, 어떻게 느끼는가?)

 

5. 순종으로 응답하는 사람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모세에게 말 걸어 오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세속의 욕망과 자기 의지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아 있고 힘 있는 말씀으로 다가오실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멈추어 서서 듣고, 숨김없이 드러내고, 하늘의 언어에 순종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마다 참된 자유와 해방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찰)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가 드러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응답) 하늘의 언어에 귀 기울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말 걸어 오시는 하나님, 광야 같은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이름을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듯이, 우리의 고집과 두려움과 욕망을 내려놓게 해주십시오. 살아 있고 힘 있는 말씀 앞에서 숨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숨은 의도를 정직하게 드러내게 해주십시오. 들은 말씀을 실제 삶으로 결합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영생의 길을 걷게 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말 걸어 오실 때, 언제나 기쁨으로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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